화엄사 창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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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07 13:42 조회11,913회 댓글0건본문
♣ 화엄사 창건이야기 ♣
한반도와 만주땅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정립된 뒤 제각기 국력을 기르고 영토를 확장하여 중국을 비롯한 멀리 천축에서까지 문화와 문명을 수입하여 바야흐로 태평성국의 기틀을 다진 삼국시대의 중엽, 소백대간(小白大幹)의 남단에 우뚝솟은 두류산(頭流山 : 현 智異山)에 봄이 무르익어가는 삼월중순 무렵.
농부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기에 한창 바삐 일손을 놀리고, 동리에서 꼬마들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소꼽놀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꼬마들은 멀리 두류산을 향하여 합장하고 그들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조석으로 염불을 외던 대로 소리를 맞추어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으며 선재할아버지는 밭 언덕에 쉬면서 꼬마들의 놀이에 눈을 던지며 미소를 지으면서 두류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박노인은 어제도 그제도 산 중턱 골짜기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한 그는 지금 또 안개마냥 골짜기에 번지는 것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안개가 아니라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었다. 박노인은 필시 산중에 무엇이 있겠구나 하면서 마을사람 십여명을 대동하고 골짜기에 이르렀다.
계곡 겉에 움막을 발견하고 다가가니 움막 안에서는 낭랑한 목소리와 장중한 음성이 조화를 이룬 독경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은 발을 멈추고 귀를 모았다. 사실 마을 사람들로서는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 다른 나라 사람이 읽고 있는 독경 소리를 알아들을 줄도 몰랐으며, 독경이 끝나고 잠시후 한 사문이 나왔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친 사문의 모습은 이들의 마을 십여리 떨어진 홍련사(紅蓮寺)라는 절의 스님과 어딘가 다른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얼굴 생김새와 피부가 우리민족과는 전혀 달랐으며 가사를 둘둘 말아서 몸을 감고 있는 점이었다. 박노인은 사문과 합장한후 대화를 나눴지만 의사 소통을 할 수 없었다. 사문은 움막안에서 벼루, 붓, 종이를 갖고 나와 글로서 얘기를 주고 받게 되었다.
천축국에서 불법을 펴고자 인연국토에 찾아왔으며 한문은 천축국에 유학온 양나라 스님에게 배웠고 백제국에는 연(鷰)이라는 짐승을 타고 비구니이신 어머니와 함께 날아서 왔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놀라는 기색을 하였다. “빈도는 바닷가의 절에 살면서 바다 속에 사는 연이라는 짐승과 친해졌지요. 이 연은 능히 공중을 날으고 바다 속으로도 헤엄쳐 가며 바다에 떠서 배처럼 다니기도 합니다. 빈도는 이 연을 교화하여 오계(五戒)를 주고 제자로 삼아 이곳에 까지 왔고 방금 읽던 경전은 부처님의 최고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 이렇게 필담을 나눈 후 사문은 저녁공양 거리를 준비하기 위하여 피리 비슷한 악기를 꺼내어 입에 대고 길게 세 번 불어대니 웅장한 소리와 함께 천년묵은 거북만한 연이 공중에서 날아오더니 사문 곁에 사뿐히 내려 앉았는데 그 형상이 머리는 꼭 용같고 몸은 거북이며, 몸 길이가 열자는 넘어 보이고 두 날개를 가진 짐승이었다. 박노인 일행은 숨을 죽이고 이 신기한 동물을 보느라고 노비구니께서 그들의 등뒤에 나와 서 있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연의 등에 사문이 앉자 노비구니는 바른손을 들어 번쩍들어 떠나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사문은 노비구니에게 합장하고 다음에 연의 목을 쓰다듬어 주고는 범어로 뭐라고 이르니 연은 곧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박노인 일행은 감탄을 하며 사문이 사라져간 남쪽을 향하여 합장을 하였다. 연을 타고 다니시니 연존자라 할까. 비연존자(飛鷰尊者)라 할까. 의논한 끝에 연기존자(鷰起尊者)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후 “우리 고을에 경사가 난거야. 부처님께서 태어난 나라에서 오신 스님께서 부처님의 최고경전인 화엄경을 백제땅에 가져왔으니,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한 이곳이 바로 최고의 불연국토(佛緣國土)야”
몇 달이 지나고 연기존자도 우리말에 상당히 익숙해져서 이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향상되었고 박노인의 손자인 선재를 시자로 두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존자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하나 예불할 장소가 마땅치 못했다. 움막에서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없다하여 박노인의 마을 사람들은 법당을 건립하고자 존자님께 간청을 하여 불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이룩된 건물이 요사(寮舍)겸 설법전인 해회당(海會堂)이고, 또 한해가 지난 다음해 가을에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인 법당이 낙성되었다. 바로 이해가 백제성왕22년 갑자세(서기544년)였다. 박노인은 존자에게 연기존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아오니 연기사(鷰起寺)라 하자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존자는 한참동안 침묵하여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며 “빈도는 본국에서 대방광불화엄경을 수지독송해 왔고 현재도 이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수행을 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창해를 건너 이 나라에 온 것도 화엄법문을 선양하기 위함이니 華嚴寺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지요.” 마을사람들은 “존자님께서 명명(命名)한 가람 이름에 이의가 없이 대찬성입니다. 화엄사, 화엄경, 화엄법문, 연화장세계라 이 나라가 연화장 불국토세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존자는 또 한마디 하는데 “ 이 산은 멀리 백두산의 정기가 줄곳 흘러 내려와서 이뤄진 산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일컫는다니 좋은 이름이외다.”헌데 빈도가 이 산에 처음 닿았을 적에 삼매에 들어보니 문수대성께서 일만보살대중에게 설법하시는 것을 친견하였으니 이산은 분명히 문수보살이 항상 설법하는 땅 임에 틀림이 없소. 그리니 만큼 산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이름을 택하여 지리산(智利山)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리하여 智利山 華嚴寺가 되었다.
연기존자는 박노인외 마을사람들에게 특별히 차공양을 했다. 처음 먹어보는 차맛이었다. 혀끝과 입안에 젖어드는 향내음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그윽함이 깃들어 있었다. “존자님, 이 차는 무슨 차 입니까 ?”
이 차는 마야차 라고 하는데 빈도가 여기에 올 때 수십 그루의 차나무와 씨앗을 갖고와 이산 금방에 심어 났지요. 이 차는 불보살님께 올리는 귀중한 차 이지요. 이 차를 올린 후에 이렇게 게송하지요.
“깨끗한 맑은 물 감로수로 변하여 삼보님께 받잡노니 굽어 살펴 주옵소서”하고 염불, 독경을 한 후 내려서 빈도가 마시지요. 이 찻잔 안에 화엄법계의 무진법문이 들어있고 자비광명이 충만히 들어 있지요. 여러분 이 차를 드시지요. 이 마을사람들은 찻잔을 들어 불단에 올려놓고 게송을 읊고는 소원을 빈 다음 찻잔을 불단에서 내린 후 제자리에 각기 앉아서 흡족하게 차를 마셨다.
연기존자는 “빈도가 천축에서 제조하여 가지고 온 것이 조금 있어서 여러분께 차공양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빈도의 소원대로 화엄법문을 문수보살 도량에서 선양할 수 있도록 화엄사를 창건한 여러분의 불사동참 공덕이야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고맙기 때문이오. 여러분의 마음이 곧 불보살님의 마음이 아니겠소. 그래서 여러분께 차공양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야차도 화엄차라고 명명(命名)하고자 합니다. 화엄차의 그윽한 차 향기는 화엄사 골짜기를 맴돌고 연화장세계에 가득가득 퍼졌다. 연기존자는 화엄법문을 들려주는 것과 차공양으로 마을사람들의 노고에 보답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존자의 위덕과 효심과 무궁 무진한 법문에 감화를 입어 어느덧 신심이 지극한 신도로 변해 갔다.
그리하여 화엄사에 도인이 계신다는 소문은 날로 펴져서 널리 알려졌으며 연기존자는 문수보살을 원불(願佛)로 삼아 문수대성의 명호를 날마다 십만송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고 그를 찾는 청신사 청신녀에게 문수보살의 위덕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두류산으로만 불러오던 것을 방방곡곡에서 문수대성의 상주도량으로 여기고 지리산이라 부르는이가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문수보살은 과거 7불의 스승이라 하거니와 지혜가 가장 뛰어난 분으로서 일체보살중에 상수(上首)의 위치에 있는 보살이시며 보살이 계시는 산을 청량산(淸凉山)이라 하므로 사람들은 때로는 지리산을 청량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
연기존자는 이따금씩 연을 타고 지리산의 여러곳을 두루 살피기도 하고 더러는 며칠씩 묶고 오는 일도 있었다. 존자는 이산의 주봉을 반야봉이라 이름 하였으니 반야(般若)란 지혜요, 문수를 일컬음이다. 이 주위가 팔백리나 되는 웅장한 산이 문수대성의 상주도량이라면 이 산의 주봉을 반야봉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지리산이 문수도량이라면 산 그대로가 바로 문수의 몸이 아니랴? 수천척 높이의 봉우리가 수백도 더 되는 우뚝한 산 전체가 그대로 문수대성의 진신(眞身)이요 본면목인 것이다. 존자는 반야봉에 조그만 토굴을 하나 짓고 이름하여 묘향대(妙香臺)라 하였는데 문수를 한역하면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등이 된다. 다시 말하면 문수의 체(體)는 바로 묘유(妙有)라는 것으로 항상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묘유를 묘향(妙香)이라 일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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