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찰 화엄사는 통일신라의 ‘호남 포교’ 거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가람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28 11:01 조회2,407회 댓글0건본문
지리산 대찰 화엄사는 통일신라의 ‘호남 포교’ 거점
화엄사 잃어버린 200년
무진 스님 지음 / 글항아리 / 424쪽 / 2만5000원
임진왜란 후 중건하며 위상 높이려 ‘신라’ 접점 강조
경주 머물던 신라 불교, 화엄사 거점으로 전국 확대
의상 스님 화엄종보다 앞선 연기 스님의 화엄종 본찰
‘불 타서 소실되고 중건했다’는 문구는 사찰 안내판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다. 많은 사찰들이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 중에 소실되고 재건되는 역사를 묵묵히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료가 사라지고 역사가 왜곡되는 현상 또한 적지 않다.
중앙승가대에서 ‘나말여초 화엄사에 관한 연구’로 2022년 상반기 박사학위를 받은 무진 스님이 이를 책으로 엮어 냈다. 제목에서 보이듯 구례 화엄사의 창건 연대를 둘러싸고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200여년의 공백기를 다양한 사료와 유물 등을 통해 한 땀 한 땀 채워나간 지난한 노력의 결실이다. ‘화엄사’라는 단일 사찰의 통사적 시원을 밝히려는 시도도 새롭지만 거의 모든 기록이 사라진 상황에서 선사들의 비문이나 유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충분히 과거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 점에서도 주목된다.
'화엄사 잃어버린 200년'.화엄사와 관련된 사료들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의 방화로 상당 부분 사라졌다. 사실상 유일한 화엄사 역사서라 할 수 있는 ‘화암사사적’은 1636년 화엄사 중건 불사가 이뤄질 때 중관해안스님(1567~?)에 의해 편찬됐다. 애초의 목적이 중건을 기념해 화엄사의 위상을 드높이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 있었다.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기보다 역사 미화에 적지 않게 치중한 이유다. 그 과정에서 화엄사의 창건 시기를 신라 최초 사찰인 흥륜사의 창건 연대와 같은 544년으로 올려 잡았다.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자장(594/599~653/655), 의상(625~702), 원효(617~686) 스님이 화엄사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도 서술했다. 하지만 9세기 후반 활동한 선각도선 스님을 화엄사 창건주로 전해지고 있던 ‘연기 스님’과 동일시하는 오류도 범했다.
무진 스님은 이에 대해 앞서 754년 편찬된 ‘백지묵서 화엄경’을 통해 “황룡사 연기 스님이 화엄사의 창건주라는 심증적 확신을 제공함에도” 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는 “화엄사가 백제 땅이 아니라 신라 땅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므로 불교의 정통성 또한 신라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한 결과라는 뜻이다.
나말여초 자장계 화엄종을 대변하는 관혜 스님의 남악과 의상계 화엄종을 대변하는 희랑 스님의 북악 간 대립도 주목한다. 무진 스님은 최치원의 언급과 ‘삼국유사’의 기록 등을 근거로 자장계 화엄종이 의상계 화엄종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장계 화엄종 사찰이었던 연기 스님의 화엄사 창건업적이 지워져 버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중관해안 스님의 ‘의도’는 후대인들의 연구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뒤엉킨 역사에 발목을 잡힌 화엄사였다.
무진 스님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사료를 빈틈없이 검토하는 한편 통일신라 9세기부터 나말여초 시기까지 활동한 선사들의 일대기가 기록된 비문 17점을 분석했다. 비문의 내용을 기존의 다른 문헌과 심층적으로 비교·분석함으로써 화엄사의 역사를 하나하나 복원하고 있다. 또한 동시대 다양한 유물들과 가람 배치를 분석해 화엄사 역사 복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책에서는 수도인 경주를 중심으로 머물러있던 신라의 불교가 통일신라 이후 옛 백제 땅에 자리하고 있던 화엄사를 거점으로 비로소 전국으로 확대돼 나아갔음을 밝혔다. 통일신라의 화엄사가 의상 스님의 화엄종보다 앞서는 창건주 연기 스님의 화엄종 본찰이었음을 드러낸 점도 주목된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통일신라 8세기에 창건된 화엄사는 동시대에 창건되어 수도 경주를 대표한 불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웅장한 사찰”이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오지인 구례 지리산 중턱에 경주의 불국사에 버금가는 화엄사가 창건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신비가 드디어 풀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이 책은 화엄사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흥망성쇠도 알려주고 있다”며 일독을 권했다.
무진 스님은 화엄사 성보박물관 부관장과 문화국장 등을 역임하고 경기도 광주시에 빛고운절을 창건해 포교와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불교문화와 역사에도 관심을 기울여 불교학, 문화재학, 서양철학, 한국사상사 등을 두루 전공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지리산 대찰 화엄사는 통일신라의 ‘호남 포교’ 거점 < 출판 < 기사본문 - 법보신문 (beopbo.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