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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0.1mm의 실낱같은 붓으로 내 몸 세포 하나하나 깨워 극한의 세밀함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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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29 09:29 조회3,2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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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mm의 실낱같은 붓으로 내 몸 세포 하나하나 깨워 극한의 세밀함을 그립니다

김유태 입력 2021. 06. 25. 16:48 수정 2021. 06. 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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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선의 미학 사경(寫經) 국가무형문화재 장인 김경호
인간의 손이 1㎜ 안에 그을 수 있는 선(線)은 최대 몇 줄일까. 자를 대지 않고, 심지어 펜도 아닌 붓을 쓰는 조건에서다. 한 줄이라고 답한다면 오답이다. 두 줄도 틀렸다. 정답은 7~8줄이다. 사경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김경호 장인은 선과 획의 미학자다. 0.1㎜짜리 선과 획으로 채워 넣는 부처의 미소, 그것도 순금으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붓을 잡아 서예와 불경에 심취했고, 홀로 독학한 사경으로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뒤 전업으로 불경만 베껴 쓴 남자. 작품 한 점을 그리다 체중이 10㎏ 넘게 빠진 적도 있고, 이를 앙다무는 습관 탓에 흔들리던 위아래 어금니는 임플란트로 몽땅 바뀐 지 오래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6개월간, 더 길게는 12개월간 외출도 만남도 스스로 금한다. 작업하는 방의 기온은 평균 40도에 습도 70도. 지옥불을 연상케 하는 문자의 감옥에서 선과 획을 그을 땐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육신에 저항하느라 시간도 자아도 잊는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그의 작업이 '사경의 세계화'를 위해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불경을 넘어 성경, 코란, 만다라, 만트라, 탕카 등으로 사경 세계를 넓히고 있는 것. 최근 전주에서 전시회를 마친 뒤 잠시 상경한 김경호 장인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고향인 전주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서대문구에 살다 지난주 이사했는데, 아무래도 서울보다 눈 건강에 좋습니다. 경상(經床·사경하는 책상)에 보통 여덟 개, 아홉 개쯤의 밝은 전등을 켜다 보니 눈이 많이 상했네요. '좌우 시력 2.0'이었는데,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쓸 때도 됐고요(웃음).

―한번 작업하면 아무도 만나지 않으시죠. 만남을 허락하신 걸 보니 지금 쉬시는 듯합니다.

▷이사에 전시에… 한 달간 쉬고 있어요. 만남도 없이 '인간 구실'을 못 해야, 또 오장육부가 멎어야 한 작품 나오더군요.

―'오장육부가 멎는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선을 그을 땐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여선 안 되니까요. 붓끝 0.1㎜가 내 몸 세포 하나하나와 교감하는 상태예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금가루 넣은 아교가 녹지 말라고 방 온도를 35~45도로 맞춰 두곤 습식사우나 같은 곳에서 40~50분마다 흘린 땀 닦고, 경상 유리의 지문 닦고, 아교수 바꾸고, 붓 빨고, 접시 닦아가면서 매일 똑같은 행동을 10번 반복해야 1㎝씩 가는 거예요.

―붓털 빠지는 것까지 보이신다죠.

▷털 하나 빠지면 붓 성능이 90%로 떨어집니다. 털 3개 빠지면 그 붓은 못 쓰고요. 저는 제 작업을 '느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하는데 붓도 20~30분마다 쉬게 해줘야지 안 그러면 붓이 힘들어합니다. 고된 작업을 남들에게 맡길 수도 없어요. 제 마음에 차야 합니다.

―'0.1㎜의 예술'에 삶을 거셨어요. 왜 사경이었습니까.

▷순일무잡(純一無雜)의 상태, 제겐 그 '잡념 없음'이 끌렸어요. 또 성경과 코란에 비해 불교 경전의 진귀한 글은 세계에 덜 알려져 있죠. 완벽한 세밀함으로 경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경전을 모사해 쓰는 행위의 인문학적 가치는 뭔가요.

▷수행으로서의 사경이란 의미가 먼저 있겠죠. 사경은 그 자체로 육바라밀(六波羅蜜)에 가닿습니다. 열반에 이르기 위한 6가지 덕목인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가 그것이죠. 사경은 마음과 몸과 재료가 청정한 삼청(三淸),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삼무(三無)에 기반하는 절대 예술이에요. 고요 속에서 수행하는 거랄까.

―이동국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글 '황혜(恍兮) 홀혜(惚兮)'에서, 선생님 작품을 두고 '구상 속의 추상, 추상 속의 구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자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흘러갔어요. 해서체는 최종적으로 정착된 한문 서체이니, 그런 점에서 해서체를 쓰는 사경을 저는 극도의 추상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상을 그리는 구상이죠. 사경을 그저 똑같이 베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무리 똑같이 베껴 쓴다고 해서 같지는 않습니다. 그 같음 속에서 다름을 추구하는 거예요. 사람도 다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개별자인 것처럼요. 모사함으로써 또 개별성을 획득하는 게 사경의 예술성이에요.

―사경장으로서 예술을 정의해주신다면.

▷현대 미술사조는 추상을 추구하지만 완벽하고 균형 잡힌 보편성은 시대를 넘어섭니다.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소통이라고 전 생각해요. 사경의 추상성과 구상성은 시대 구분 없는 보편성에 기대고 있어요.

―사경의 역사는 무려 1700년이죠.

▷한국 사경은 기원후 300년 중반부터 시작됐습니다. 고려 땐 원나라에 우리 전문가들이 100명 단위로 파견됐기도 했어요. 한국 국보 중에도 230점 정도가 사경이거나 사경을 이용한 목판인데 조선시대에 맥이 끊겼어요. 700년간 끊겼던 걸 다시 잇는 작업이 사경이라 생각해요.

'법화경 견보탑품(감지금니 7층·5층보탑).' 높이 7.5㎝에 총 길이 663㎝에 달한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꼽아주신다면.

▷'법화경 견보탑품(감지금니 7층·5층보탑)'을 꼽겠습니다. 높이 7.5㎝의 두루마리 형태로 감지에 사경했는데, 폭 1㎝짜리 탑을 1㎜ 간격으로 총 463기를 그렸어요. 총길이는 663㎝입니다. 몇 년 걸렸어요.

'법화경 견보탑품'의 안쪽 모습. 두루마리 형태의 감지에 폭 1㎝짜리 탑을 1㎜ 간격으로 그렸다. 담아낸 탑의 총 수는 463기다. 탑의 몸통에 한 층에 한 글자씩, 수천 자의 법문을 새겨넣었다.
―국보를 리메이크한 작품도 있으시죠.

▷국보 제235호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變相圖)를 다시 그리는 데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교의를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을 변상도라고 해요. 비교해 자세히 보면 국보 원본의 용의 머리와 목 부분이 어색하죠. 이런 부분을 바로잡았어요. 또 '법화경약찬게(감지금니일불일자)'는 1.05㎝ 높이의 한 불상당 한 글자씩 새겼습니다. 이때 쓰던 붓은 세밀한 붓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이걸 어떻게 했는가 싶습니다(웃음).

미세한 붓으로 불경을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141호 김경호 사경장(위 사진)과 국보 제235호 변상도를 리메이크한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작품(아래 사진). [사진 제공 = 한국전통사경원]
―거대한 묵서(墨書)도 눈에 띕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높이 288㎝, 길이 1450㎝예요. 낮에는 학생들 가르치고, 밤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으면서 작업했더니 45일 뒤에 13㎏이 빠졌어요. 그 이후로는 작업 때 규칙적으로 진행합니다. 1㎜씩 작업할 때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해요.

'법화경약찬게(감지금니일불일자)'. 불상 하나당 높이는 1.05㎝로 전부 균일하다. 불상의 몸에 한 글자씩 새겨넣었다.
―금으로 쓴 '성경 사경'도 독특합니다.

▷성경과 이슬람교의 코란, 넓게는 티베트 불화인 탕카, 밀교의 상징불화 만트라, 밀교 경전 탄트라로도 외연을 확장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융복합 사경이라 합니다. 하지만 사경을 어렵게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볼펜으로 필사하는 우리나라 교인분들도, 컴퓨터 자판으로 두드리며 경전 의미를 되새기는 분들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전부 사경인입니다.

'10음절만트라(십상자재도)' 작품.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많은 경전들은 공통분모가 있어 보입니다.

▷모든 종교는 교리가 다르지만 인류의 행복과 평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신을 통해서든 부처를 통해서든 인간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길 지향하는 마음만큼은 같으니까요. 물론 그걸 교리적으로 악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사람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과거 출가하려 하셨다는 소문이 사실일까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고교 때 불교에 심취했어요. 흔히 말하는 참선, 깨달음 얻는 승려, 선승이 되려고 했습니다. 세 번 가출했지만 부모님께 붙들려 왔어요(웃음). 마지막 가출은 방 한 칸에 부엌 하나만 있는 토굴로 갔습니다. 삼일계를 받고 정식 스님이 되려는데, 전날 밤 꿈에 나오신 모습 그대로 부친께서 토굴로 들어오시더군요. 아마 그때 마음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을 겁니다.

―사경만 평생 쓰시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습니다.

▷여초 김응현 선생(1927~2007)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1회 불교사경대회 심사위원장이셨는데 본인 제자들 작품 대신 일점의 인연도 없는 제 작품을 1등으로 정해주셨어요. 의무와 책임이라 생각해 그 길로 전업을 선택했고 바로 고행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금사경은 재료도 비싸고, 보시하듯 작업한 작품이라 잘 팔지도 또 잘 팔리지도 않으니 경제적으로도 넉넉할 수가 없었죠. 아내와 이제는 장성한 두 아이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큰 힘이 됐습니다.

―선생님께 사경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천부경 만다라' 작품.
▷종합예술이에요. 한자, 불경, 서예, 불교, 교리, 미술사, 사경의 역사를 모두 알아야 하니까요. 제가 낸 작품집의 목차 제목을 신라시대 의상조사님의 '법성게(法性偈)'에서 가져왔는데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한 티끌 속에 시방 세계를 머금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하리라)'를 바꿔서 '일미리중함시방(一米里中含十方·1㎜ 안에 시방 세계를 머금었고)'으로 차용했어요. '사경 1㎜ 안에 모든 세계가 있다'는 수행의 마음, 그것이 제게 사경이었습니다.

―내년 미국 예일대 전시도 예정돼 있으시죠.

▷한국 사경은 해외에서 더 많이 알아주세요. 예일대, 컬럼비아대, 뉴욕대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진행이 멈췄어요. 다음달 한 예일대 교수님이 방한하실 예정이고 성사되면 내년쯤 될 것 같아요. '한국 전통 사경의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를 주제로 지금까지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미술관, 플러싱 타운홀, 보스턴 문수사, 뉴욕 티베트하우스 등에서 60번쯤 특강과 금사경 제작 시연회를 열었습니다. 또 전통 사경이 현대화될 필요도 있다고 봐요. 이승엽 선수 아시아 홈런 신기록 기념 공로패, 김수환 추기경 80수 기념 송시 등도 제가 작업했는데 우리 삶 속에서 사경의 가치가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경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불교 용어로 사경을 흔히 '삼매(三昧)의 예술'이라 합니다. 잡념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를 삼매경(境)이라고 해요. 삼매, 순일무잡에 매료돼 지금까지 왔습니다. 윤회의 관점에서 전생이 있다면 아마 저는 제가 오래전에 완성하지 못한 사경을 다시 쓰고, 변상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온 게 아닌가 싶어요. 사경은 운명이자 숙명이었네요.

▶▶He is…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사 졸업 △조계종총무원·동방연서회 주최 제1회 불교사경대회 대상 △국가무형문화재 사경장 보유자 1호 지정 △대한민국 전통사경 기능전수자 △현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현 한국전통사경원장 △현 조계종 화엄사 전통사경원장 △해외 금사경 특강 및 제작 시연회 총 60여 회 △전통사경 개인전 총 22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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